법은 현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름표, 경계, 해상도
시리즈 7/7 · 노동법과 제도설계
법은 현실 전체를 그대로 담을 수 없다.
현실은 연속적이고 복잡하지만 법은 어디선가 선을 그어야 한다.
근로자와 비근로자.
사용자와 비사용자.
교섭대상과 비교섭대상.
근로조건과 경영결정.
문제는 선을 긋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을 긋느냐다.
앞선 글들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나타난 경계의 불확실성, 그 불확실성을 판례와 노동위원회 판단을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 그리고 그 학습비용을 현장의 노사 당사자가 부담하는 문제를 살펴봤다.
이어 ‘일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추가하는 방식과, 플랫폼·특수고용 관계를 시장접근·보수·배정·평판·퇴출·비용부담 같은 구조적 요소로 분해해서 보는 방식을 비교했다.
이 논의들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법은 현실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사람에게 붙은 이름은 읽기 쉽다.
근로자.
사장.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
하지만 이름은 현실의 일부만 압축한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가격과 고객을 스스로 정하고, 누군가는 계약서만 프리랜서일 뿐 상대방이 가격·시장접근·평판·퇴출권을 사실상 쥐고 있을 수 있다.
같은 이름이 다른 관계를 담을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이름이 같은 구조를 담을 수도 있다.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배달기사의 직종은 다르지만 특정 회사나 플랫폼이 시장접근과 보수조건을 좌우하고 비용과 위험은 개인에게 남기는 구조에서는 공통점이 생긴다.
그래서 앞선 글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직종을 세지 말고, 통제구조를 봐야 한다.
그러나 구조를 더 자세히 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법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해상도를 무한정 높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시간 자율성, 가격 자율성, 고객 접근성, 소득의존도, 반복성, 비용전가, 위험부담, 대기구속성을 모두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각 사례마다 가중치를 다르게 주기 시작하면 제도는 현실을 정밀하게 본다는 명분 아래 다시 판단비용을 폭발시킬 수 있다.
좋은 제도는 가장 정교한 제도가 아니다.
필요한 차이는 읽고, 중요하지 않은 차이는 버릴 수 있는 제도에 가깝다.
좋은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개념은 기존 언어가 놓치던 현상을 잡고, 다른 개념과 구분되며, 현실을 압축하고, 사례에 적용할 수 있고, 측정·정책·권리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법의 분류도 결국 비슷한 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 기준이 실제 중요한 차이를 잡는가.
그 기준 때문에 불필요한 경계분쟁이 계속 생기지는 않는가.
당사자가 자신의 위치를 사전에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가.
행정기관이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가.
기준을 정교하게 만드는 비용보다 얻는 정보가 더 큰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분류가 책임을 실제 권한이 있는 곳에 붙이고 있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함정이 생긴다.
제도는 현실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에 보상을 붙이느냐에 따라 사람과 조직도 그 기준에 맞춰 움직인다.
이를 작업상 Legibility Incentive Trap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읽기 쉬운 경로를 평가하고 보상하면 사람들이 그 경로로 이동하고, 그 결과 그 경로가 더 흔해지며, 제도는 다시 그것을 ‘정상’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법의 분류도 현실을 묘사하는 동시에 현실을 만든다.
근로자만 보호하면 기업은 근로자성이 약하게 보이는 계약형태를 선택할 유인을 가질 수 있다.
특정 직종만 보호하면 새로운 직종은 다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 있다.
반대로 통제와 위험부담에 책임을 붙이면 조직은 그 통제와 위험배분 자체를 다시 설계할 유인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분류기준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어떤 행동을 보상하고, 어떤 조직형태를 유도하며, 어떤 책임회피를 어렵게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제도적 선택이다.
좋은 법은 현실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현실의 중요한 구조를 충분한 해상도로 읽으면서도, 그 기준을 당사자가 이해하고 행정기관이 집행할 수 있도록 단순화하는 것이다.
너무 거칠면 중요한 차이를 놓친다.
너무 세밀하면 모든 사람이 자기 사례를 들고 다시 판정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법의 좋은 경계는 가장 정밀한 선도, 가장 단순한 선도 아니다.
책임과 권한이 실제로 갈라지는 결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따라가는 선이다.
앞선 글들에서 반복해서 나온 문제는 결국 여기에 모인다.
새 이름을 얼마나 많이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규칙을 얼마나 많이 추가할 것인가도 아니다.
현실의 어떤 차이가 책임을 달리할 만큼 중요한 차이인지 먼저 찾아야 한다.
좋은 법은 현실을 많이 설명하는 법이 아니다.
현실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