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가능하다면 최저 서비스단가도 가능하다
노동의 최소가격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시리즈 6/7 · 노동법과 제도설계
플랫폼 배달노동자의 낮은 보수를 이야기하면 논의는 자주 근로자성 문제로 돌아간다.
근로자라면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다.
근로자가 아니라면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다.
최저임금만이 인간 노동에 최소가격을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라는 전제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최저임금 자체가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발견되는 가격은 아니다. 생계비, 물가, 임금수준, 생산성, 고용에 미치는 영향, 사업자의 지불능력과 분배문제 등을 놓고 사회가 이보다 낮게 인간의 노동력을 구매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 제도적 가격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꿀 수 있다.
고용계약이 아닌 형태로 인간의 노동을 구매할 때에는 왜 최소가격을 정할 수 없는가?
플랫폼 배달 한 건에는 단순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행위만 들어 있지 않다.
배달원은 주문을 기다린다.
매장까지 이동한다.
픽업을 기다린다.
자기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사용한다.
연료비와 정비비, 보험료를 부담한다.
교통사고와 악천후의 위험에 노출된다.
지역의 도로와 매장별 지연시간을 학습한다.
그러나 보상단위가 ‘배달 1건’으로만 표시되면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가격표 밖으로 사라질 수 있다.
고용계약이 없다고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라진 것은 비용이 아니라, 비용을 떠넘긴 흔적이다.
따라서 근로자성 인정과 별개로 최저 서비스단가 또는 최저 노무제공 보수율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전혀 구현된 적 없는 발상도 아니다.
뉴욕시는 앱 기반 배달노동자에게 별도의 최저보수율을 적용하고 있다. 2026년 4월부터 적용되는 기준은 팁을 제외하고 시간당 22.13달러이며 매년 물가에 따라 조정된다. (NYC DCWP)
제도의 계산방식도 단순히 완료된 배달 건수만 세는 것은 아니다. 표준방식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실제 배달시간뿐 아니라 플랫폼 전체 노동자의 on-call time, 즉 앱을 켜고 주문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총지급액 산정에 반영한다. 다른 계산방식을 택하면 대기시간을 따로 보상하지 않는 대신 실제 배달시간에 더 높은 보수율을 적용해야 한다. (NYC DCWP FAQ)
뉴욕 제도가 여기서 제안하는 모든 비용을 반영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보여준다.
플랫폼 종사자를 전통적인 시간급 근로자로 완전히 재분류하지 않고도 별도의 최소보수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도 하루아침에 숫자를 정하지 않았다. 시 당국은 배달노동자의 소득과 노동조건을 조사했고, 규칙안을 공개한 뒤 노동자와 플랫폼 등의 의견을 받았다. 첫 규칙안에는 약 2,000건의 의견이 제출됐고, 이를 반영해 수정안을 내고 다시 공청회를 열었다. (NYC DCWP)
물론 최소 서비스단가를 설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대기시간은 어디까지 노동시간인가.
장비비는 어떤 기준으로 계산할 것인가.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비용 차이는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야간·폭우·폭설 같은 위험에 얼마를 더 지급할 것인가.
그러나 어렵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교한 개별산정을 피하기 위해 기본보수율을 정하고, 장비·위험·야간·악천후처럼 관찰하기 쉬운 몇 가지 요소에 명확한 가산기준을 붙이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가격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도 인간 노동의 ‘진짜 객관적 가격’을 발견한 제도가 아니다.
사회가 어떤 비용을 노동가격 안에 포함할 것인지 결정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 최저 서비스단가도 정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의 비용을 가격에 반영할 것인지, 아니면 장비·대기·위험과 소득변동을 계속 개인에게 남겨둘 것인지는 자연법칙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노동의 비용으로 인정하고,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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