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이라는 새 이름표가 필요한가
사람을 분류할 것인가, 관계를 분해할 것인가
시리즈 4/7 · 노동법과 제도설계
정부와 국회는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등 기존 노동법의 보호 밖에 놓인 사람들을 포괄하기 위해 이른바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기술 변화와 고용형태 다변화로 생긴 법·제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출발점으로 설명해왔다. (고용노동부)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현행 노동법의 보호 여부가 근로자성 판단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면, 근로자로 인정되기 어려운 플랫폼 종사자나 프리랜서가 계약상 우월한 사업자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기본적인 보호에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기존 분류가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해서, 그 위에 더 큰 이름표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해답인가?
근로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플랫폼 종사자.
이미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을 여러 이름으로 나눈다.
여기에 다시 ‘일하는 사람’이라는 범주를 추가하면 보호범위는 넓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곧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누가 일하는 사람인가.
순수한 독립사업자는 어디에서 빠지는가.
부업으로 가끔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과 생계 대부분을 한 플랫폼에 의존하는 사람은 같은가.
스스로 가격과 고객을 정하는 프리랜서와 계약서만 프리랜서일 뿐 사실상 상대방의 시장접근·보수·평판 통제를 받는 사람은 같은가.
즉 새로운 이름표도 결국 새로운 경계를 만든다.
다른 접근도 가능하다.
사람에게 먼저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의 구조를 분해해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관계에서 다음을 물을 수 있다.
언제 일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가.
가격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가.
고객을 직접 확보할 수 있는가.
일을 거절했을 때 불이익이 있는가.
평판과 경력을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계정정지나 계약종료 이후에도 다른 시장으로 옮길 수 있는가.
장비비와 사고위험, 대기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여기서는 이 묶음을 실질 자율성이라는 축으로 보자. 형식적으로 ‘사장’이나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것과 실제로 자기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플랫폼 노동에서 이 차이는 특히 선명하다.
고용계약은 없지만 플랫폼이 고객 접근, 단가, 배차, 평점, 계정정지와 정산방식을 좌우할 수 있다. 노동자는 장비와 보험, 사고위험과 소득변동을 부담한다.
형식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지만 중요한 경제적 결정권은 독립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관계를 이 시리즈에서는 비고용 통제형 노동이라고 부르겠다.
고용계약은 없지만 특정 사업자 또는 플랫폼이 노무제공자의 시장접근권, 보수조건, 평판, 배정, 퇴출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노동형태.
이 접근의 장점은 모든 사람을 새 범주 하나에 억지로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호 역시 한꺼번에 줄 필요가 없다.
안전, 보수지급, 계약조건 설명 같은 권리는 넓게 보장할 수 있다. 특정 사업자가 시장접근이나 보수, 퇴출을 강하게 통제한다면 비용전가 제한, 보수기준 설명, 집단대표, 계정정지 이의제기 같은 추가 보호를 붙일 수 있다. 전통적 지휘·감독과 조직 편입까지 강하다면 기존 근로기준법상의 보호를 적용하면 된다.
즉 보호를
사람의 이름표
가 아니라
관계에서 실제로 행사되는 권한과 부담
에 따라 층화하는 것이다.
물론 법은 결국 적용대상을 정의해야 한다. 이름과 범주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순서는 중요하다.
먼저 ‘일하는 사람’이라는 바구니를 만들고 현실을 그 안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실제로 누가 가격을 정하고, 시장접근을 통제하고, 위험을 부담하고, 퇴출권을 행사하는지를 먼저 본 뒤 그 구조에 맞는 책임을 붙일 것인가.
기존 근로자성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면 보호의 관문을 넓힐 필요는 있다.
그러나 낡은 이름표의 문제를 새로운 이름표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이 정말 보고 싶은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이라고 불리는지가 아니라,
누가 결정권을 갖고 있고, 누가 위험을 부담하며, 누가 그 관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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