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대상을 왜 베타테스터로 쓰는가
제도적 예외처리 비용의 외부화
시리즈 3/7 · 노동법과 제도설계
자동화된 서비스가 잘못 작동할 때 흔히 벌어지는 일이 있다.
시스템이 정상적인 사례는 빠르게 처리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례가 들어오면 제대로 분류하지 못한다. 그러면 사용자가 다시 설명하고, 자료를 제출하고, 상담원을 찾아 헤매고, 잘못된 판정을 뒤집기 위해 자기 시간을 써야 한다.
시스템이 처리하지 못한 예외비용을 사용자가 대신 흡수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작업상 User-as-Exception Buffer라고 부를 수 있다. 시스템의 예외처리 능력이 부족할수록 사용자의 시간·접근권·신뢰가 완충재처럼 소모된다.
노동제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사용자성이나 교섭대상을 둘러싼 판단은 노동위원회에 상당 부분 맡겨졌다. 같은 사안을 두고 초심과 재심의 판단이 달라지는 사례도 이미 나왔다.
중흥토건·중흥건설 사건에서는 지방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에서 산업안전 의제에 대해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반면 임금 관련 요구에 대해서는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의 사업장에서도 의제에 따라 사용자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계가 실제 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연합뉴스)
법적으로는 의미 있는 발전이다.
그러나 그 발전은 추상적인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 교섭을 요구했고, 누군가는 거부하거나 다퉜고, 당사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 판단을 받고 다시 중앙노동위원회까지 갔다. 그 과정을 거친 뒤에야 다음 사람들에게 참고할 선례가 하나 생겼다.
이 구조에서는 초기 당사자가 단순한 권리의 수혜자가 아니다.
제도가 아직 처리하지 못하는 예외를 자기 사건으로 처리하는 완충재가 된다.
이를 굳이 이름 붙인다면 Legal Exception Buffer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권리를 만들 때 모든 예외를 미리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행정판정과 판례를 통해 경계가 발전하는 것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정도가 있다.
국가가 사전에 유형을 더 세분화하고, 명백한 포함·제외 사례를 제시하고, 추정규칙을 만들고, 초기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수록 당사자가 직접 떠안아야 하는 예외처리 비용은 줄어든다.
반대로 기본경계를 넓게 열어둔 뒤
요구해보라 → 다투면 노동위에 가라 → 재심해보라 → 사례가 쌓이면 기준이 생긴다
는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제도는 학습하지만, 그 학습비용은 현장에 남는다.
노란봉투법 시행 100일 시점에는 사용자성 등을 둘러싸고 141개 원청 사업장이 노동위원회 절차를 거쳤으며, 일부는 재심 중이거나 결정서 송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합뉴스)
그리고 시행 6개월이 된 지금도 정부는 다시 별도의 시행지침을 내며 노동쟁의 대상의 판단기준을 구체화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그 목적을 현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이것이 필요했다면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 구체화를 얼마나 더 일찍 할 수 있었는가?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제도라면 노동자에게 권리를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동자가 자기 직장관계, 시간, 노조의 자원과 법적 위험을 먼저 걸어야 하는 상황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보호대상은 제도의 수혜자여야 한다.
제도의 품질검사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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